과연 백로성, 히메지의 명실상부한 여행 명소 히메지성
지난 이틀간 자전거로 달린 거리가 140km에 육박한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 정도로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는 내게는 꽤나 부담스러웠나 보다. 자고 일어났더니 무릎과 엉덩이가 도무지 내 것 같지가 않다. 자전거에 오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오늘도 안장에 올라야 한다. 전날의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고베로 돌아가겠다고 굳은 다짐을 했다. 다짐만 한 것이 아니라 숙소 예약도 진즉에 끝내 두었다. 당연히 환불 위약금은 숙소비 전액인 숙소다.
몸뚱아리가 천근만근인 상황에서도 어쩜 그리 고생길을 잘 닦았는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새어 나온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은 전날의 나를 향해 욕을 한 바가지 퍼부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정말로 싫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도 나는 자전거에 올라야 하는 몸이다.
떠날 준비를 마치고 로비로 내려오니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서 커피를 드시고 계신다. 내린 지 얼마 안 됐는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다.
나에게도 한 잔 권하신다. 아무 생각 없이 한 잔 받아들었는데 웬걸, 어처구니없게 맛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타지에서 공짜로 얻어 마신 커피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돈 내고 마신 커피까지 범위를 넓혀도 두 번째로 맛있다. 대만 타이난에 있는 '비씨가배'라는 곳에서 마신 드립 커피 다음으로 훌륭하다.
사장님께서 커피를 권하셨을 때는 떠날 채비로 부산한 와중이었다. 거절은 예절이 아닌 것 같아서 적당히 마시는 시늉만 하려고 했지만 한 모금 넘기자마자 그대로 자리 깔고 앉아버렸다. 해야 할 일도 까맣게 잊고는 이내 빈속에 두 잔을 비워냈다.
몸뚱아리는 천근만근이지만 사장님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푸근한 마음을 안고 길을 나서게 됐다.
잘 묵고 갑니다 사장님. '엔가쿠도우 호스텔'이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였다. 오래되고 허름했지만 수수한 정이 넘치고 정말 맛있는 커피가 있다. 이 시국 때문에 영업을 잠시 중단하신 것 같았는데 요즘은 재개하셨으려나 모르겠다. 커피 한 잔 얻어마시러 또 가겠습니다. 부디 다시 만나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히메지성은 숙소에서 멀지 않았다. 안장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 뽀얀 자태를 마주할 수 있었다.
온 벽면에 하얗게 칠한 회반죽 때문에 '백로성'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과연 그 별명답게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얀 빛깔 영롱한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 히메지성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인 센히메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정략결혼으로 지금의 화려함을 갖추게 된 히메지성이다.
내 몸 같지 않은 몸뚱아리를 이끌고 힘겹게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천수각을 눈앞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멀리서 봤을 때도 그렇고 가까이서 볼 때도 그렇고 감상은 한결같다. 참으로 '하얗다.'
히메지성의 천수각은 여느 성의 천수각처럼 내부를 탐방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천수각이 있어도 잘 안 올라간다. 몇 군데 다녀 보니 그놈이 그놈같이 느껴진 탓이다. 하지만 히메지성은 옛날부터 꽤나 와 보고 싶었던 곳이다. 이곳의 천수각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오사카성 이후로는 내 의지로 단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 천수각이지만 그 오랜 규칙을 간만에 깨고 발걸음을 안으로 향했다.
내부는 예상했던 대로 다른 일본 성들의 천수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무로 맨들맨들하게 마감한 마룻바닥이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층계가 반복된다. 방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아주 가파르게 만든 계단을 따라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면 군주가 기거하는 공간이 나타난다. 그곳에는 필시 상당히 볼 만한 전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상당히 볼 만한 전망'을 만나기 일보직전이다. 과연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히메지 시내의 한적한 풍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천수각의 꼭대기 층이다.
일본에서 성이라는 것은 대체로 그 동네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가진 천수각의 꼭대기 층은 높은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이니 탁 트인 풍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규칙은 지금까지 다녀본 다섯 군데의 성에서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은 적이 없었다. 히메지성 역시 다르지 않다. 여지없이 시원스런 풍경이 나를 반긴다. 생각보다 가파른 계단 때문에 오는 길이 꽤나 고생스럽긴 했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는 풍경이다.
재밌게 즐겼으니 지금부터는 다시 고생의 시간이다. 올라오는 건 그나마 견딜 만했는데 내려가는 건 살짝 고민스럽다. 무릎이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경사가 공포스럽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지만 그런 건 없다. 혹시나 엘리베이터를 기대했지만 그런 게 있을 리가. 악으로 깡으로 버티면서 계단을 내려가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한발 한발 워낙 조심스럽게 딛는 바람에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찌 됐든 무사히 땅에 닿았다. 천수각 주변을 조금 더 톺아보고 발걸음을 밖으로 향하니 경내가 소란스럽다.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왔나 보다.
어두침침한 천수각을 나온 직후라서 그런지 유난히 하늘이 맑아 보인다. 계단 탓에 기진맥진했지만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목표를 달성했다. 다시 고베로 향하는 50km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그건 조금 뒤의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지금은 여운에 집중하고 싶다.
어쨌든 히메지 여행은 여기까지다. 마침내 후반전이 시작되려는 참이다. 이제부터는 반환점을 돌아 본격적으로 오사카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부디 평안과 안녕이 깃들기를.
과연 백로성, 히메지의 명실상부한 여행 명소 히메지성
지난 이틀간 자전거로 달린 거리가 140km에 육박한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 정도로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는 내게는 꽤나 부담스러웠나 보다. 자고 일어났더니 무릎과 엉덩이가 도무지 내 것 같지가 않다. 자전거에 오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오늘도 안장에 올라야 한다. 전날의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고베로 돌아가겠다고 굳은 다짐을 했다. 다짐만 한 것이 아니라 숙소 예약도 진즉에 끝내 두었다. 당연히 환불 위약금은 숙소비 전액인 숙소다.
몸뚱아리가 천근만근인 상황에서도 어쩜 그리 고생길을 잘 닦았는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새어 나온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은 전날의 나를 향해 욕을 한 바가지 퍼부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정말로 싫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도 나는 자전거에 올라야 하는 몸이다.
떠날 준비를 마치고 로비로 내려오니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서 커피를 드시고 계신다. 내린 지 얼마 안 됐는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다.
나에게도 한 잔 권하신다. 아무 생각 없이 한 잔 받아들었는데 웬걸, 어처구니없게 맛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타지에서 공짜로 얻어 마신 커피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돈 내고 마신 커피까지 범위를 넓혀도 두 번째로 맛있다. 대만 타이난에 있는 '비씨가배'라는 곳에서 마신 드립 커피 다음으로 훌륭하다.
사장님께서 커피를 권하셨을 때는 떠날 채비로 부산한 와중이었다. 거절은 예절이 아닌 것 같아서 적당히 마시는 시늉만 하려고 했지만 한 모금 넘기자마자 그대로 자리 깔고 앉아버렸다. 해야 할 일도 까맣게 잊고는 이내 빈속에 두 잔을 비워냈다.
몸뚱아리는 천근만근이지만 사장님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푸근한 마음을 안고 길을 나서게 됐다.
잘 묵고 갑니다 사장님. '엔가쿠도우 호스텔'이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였다. 오래되고 허름했지만 수수한 정이 넘치고 정말 맛있는 커피가 있다. 이 시국 때문에 영업을 잠시 중단하신 것 같았는데 요즘은 재개하셨으려나 모르겠다. 커피 한 잔 얻어마시러 또 가겠습니다. 부디 다시 만나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히메지성은 숙소에서 멀지 않았다. 안장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 뽀얀 자태를 마주할 수 있었다.
온 벽면에 하얗게 칠한 회반죽 때문에 '백로성'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과연 그 별명답게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얀 빛깔 영롱한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 히메지성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인 센히메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정략결혼으로 지금의 화려함을 갖추게 된 히메지성이다.
내 몸 같지 않은 몸뚱아리를 이끌고 힘겹게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천수각을 눈앞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멀리서 봤을 때도 그렇고 가까이서 볼 때도 그렇고 감상은 한결같다. 참으로 '하얗다.'
히메지성의 천수각은 여느 성의 천수각처럼 내부를 탐방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천수각이 있어도 잘 안 올라간다. 몇 군데 다녀 보니 그놈이 그놈같이 느껴진 탓이다. 하지만 히메지성은 옛날부터 꽤나 와 보고 싶었던 곳이다. 이곳의 천수각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오사카성 이후로는 내 의지로 단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 천수각이지만 그 오랜 규칙을 간만에 깨고 발걸음을 안으로 향했다.
내부는 예상했던 대로 다른 일본 성들의 천수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무로 맨들맨들하게 마감한 마룻바닥이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층계가 반복된다. 방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아주 가파르게 만든 계단을 따라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면 군주가 기거하는 공간이 나타난다. 그곳에는 필시 상당히 볼 만한 전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상당히 볼 만한 전망'을 만나기 일보직전이다. 과연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히메지 시내의 한적한 풍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천수각의 꼭대기 층이다.
일본에서 성이라는 것은 대체로 그 동네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가진 천수각의 꼭대기 층은 높은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이니 탁 트인 풍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규칙은 지금까지 다녀본 다섯 군데의 성에서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은 적이 없었다. 히메지성 역시 다르지 않다. 여지없이 시원스런 풍경이 나를 반긴다. 생각보다 가파른 계단 때문에 오는 길이 꽤나 고생스럽긴 했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는 풍경이다.
재밌게 즐겼으니 지금부터는 다시 고생의 시간이다. 올라오는 건 그나마 견딜 만했는데 내려가는 건 살짝 고민스럽다. 무릎이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경사가 공포스럽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지만 그런 건 없다. 혹시나 엘리베이터를 기대했지만 그런 게 있을 리가. 악으로 깡으로 버티면서 계단을 내려가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한발 한발 워낙 조심스럽게 딛는 바람에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찌 됐든 무사히 땅에 닿았다. 천수각 주변을 조금 더 톺아보고 발걸음을 밖으로 향하니 경내가 소란스럽다.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왔나 보다.
어두침침한 천수각을 나온 직후라서 그런지 유난히 하늘이 맑아 보인다. 계단 탓에 기진맥진했지만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목표를 달성했다. 다시 고베로 향하는 50km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그건 조금 뒤의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지금은 여운에 집중하고 싶다.
어쨌든 히메지 여행은 여기까지다. 마침내 후반전이 시작되려는 참이다. 이제부터는 반환점을 돌아 본격적으로 오사카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부디 평안과 안녕이 깃들기를.
일본 자전거 여행기 #.11 마침내 반환점을 돌았다. 다시 고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