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미 공항 전망대와 도톤보리의 태국식 뷔페 식당 '끄룽텝'

여행이 정말로 끝나간다. 꽤나 길고 험난했던 여행이 끝나가는 중이다.
얼마나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시작한 건지는 모르겠다. 무슨 기대를 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따금 재미가 있었지만 대체로 악으로 깡으로 버틴 여정의 연속이었다. 쉬지 않고 쏟아지는 불평불만은 여행 내내 인심 좋은 시장 할머니가 얹어주는 덤처럼 따라다녔다.

힘듦도 중독이 되나 보다. 학을 뗀 게 한두 번이 아닌데 다음 자전거 여행을 생각하는 중이다.
시코쿠 지방 어딘가에는 무수히 많은 섬을 이은 자전거 일주로가 있다던데. 일주일만 더 빨리 그 존재를 알았다면 이미 시코쿠로 향하는 버스를 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가는 시점에 알게된 탓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천만 다행이다. 그렇게 고생을 해놓고 또 다시 불구덩이에 뛰어들 뻔했다.

전날에도 이타미 공항으로 놀러온 것 같은데 오늘도 또 이타미 공항이다. 여기에 누가 겁나게 비싼 술독이라도 묻어 놨나. 왜 이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드나드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또 이타미 공항이다. 왕복 30km 남짓이라서 공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여정을 대비하기 위한 연습 코스로 나쁘지 않다. 은근히 오르막도 길어서 체력을 쌓기에도 좋다. 꽤나 적절한 난이도의 자전거 훈련장이다. 3일이나 연속으로 찾고 있다는 점이 살짝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말이다.
제정신으로 떠난 자전거 여행이 아닌 줄은 알고 있었지만 보통 제정신 아닌 게 아니다.

아마도 처음으로 맑은 하늘을 본 날이었던 듯하다. 3일 연속으로 이타미 공항을 찾은 기록이 아주 성실하게 쌓여 있지만 마지막날 찍은 사진이 독보적으로 많다.
아마도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했다. 3주에 걸친 기나긴 여정이 정말로 끝을 향하는 중이다. 곧 있으면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지나고 생각하니 어이없지만 당시에는 그럴 만했다. 너무 가열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은 탓에 지치기도 했고, 정말 하고 싶은 걸 하기에는 일정이 애매하게 짧은 탓도 있었다.
3일 연속 이타미 공항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지만 희한하게 질리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비행기가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 구경할 수 있는 프롭기가 일본에는 지천이다.
아프리카에서 딱 한 번 타 본 녀석이다. 많이 흔들릴까 봐 지레 겁부터 먹었지만 의외로 쾌적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말도 안 되게 시끄러운 프로펠러 소음에 두 번 놀랐던 것은 덤이다. 나란히 붙은 세 명의 사람이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 정도로 소음이 심했다.

언젠가 풍족해지면 반드시 들이고 싶은 전용기의 후보 기재 중 하나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살 날은 차고 넘치게 남았으니 언젠가는 이루고 말 테다. 게섯거라 전용기.

요란한 칠을 한 비행기 한 대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활주로를 향해 미끄러졌다. 자세히 보니 스타워즈라는 글씨가 보인다. 별로 관심 없는 영화라서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신작이 나왔나 보다.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겼다.

B777이었다. 거대한 비행기에 도장을 하니 훨씬 구경하는 맛이 있다. 한참을 셔터만 눌러대다가 문득 주변을 둘러 봤다. 너무 덕후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어 괜히 눈치가 보인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만 덕후가 아니었다. 모두들 정신 없이 뷰파인더만 쳐다보기 바쁘다.

즐거웠습니다. 날이 좋아서 어제보다 조금 더 재밌었네요. 아마도 한동안은 올 일이 없을 듯합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기체후 일향만강하시옵고,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공항만 갔다 왔을 뿐인데 하루가 저물었다. 이타미 공항의 간판 사진을 끝으로 카메라는 한밤 중으로 시간 이동을 했다. 나는 이날 공항을 다녀오는 것말고는 한 게 없나 보다. 며칠 남지 않은 여행을 이런 식으로 낭비하다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그리고 여행의 정말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정확하게는 떠나기 하루 전, 즐길 수 있는 마지막날이다.
내일이면 드디어 집으로 간다. 그러니깐 오늘은 기나긴 여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날이다. 다행히 하늘도 공기도 맑다. 근래에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걱정이 많았다. 마지막 날까지 비를 뚫고 동네를 유람해야 하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 날이니깐 좋아하는 커피 한 캔으로 기분 좋게 아침을 깨운다. 가장 아랫줄의 왼쪽에서 다섯 번째 칸에 있는 110엔짜리 조지아 카페오레는 단언컨대 내가 일본에서 가장 좋아하는 캔커피다.
스타벅스 더블샷 에스프레소 캔커피만큼 맛있다. 덕분에 보이면 마시고 생각나면 마시고, 그냥 마신다. 보일 때마다 한 캔씩 뽑아 든다. 질릴 법도 하지만 아무리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도 팔아주면 좋을 텐데 들어올 생각을 않는다. 일해라 코카콜라.

마지막 날이니깐 무리하지 않을 테다. 오늘은 도톤보리에서 소소하게 깔작거릴 생각이다. 일단 점심 시간이 가까웠으니 밥부터 먹어야겠다.

타베로그를 뒤지다가 발견했다. 평점이 꽤나 괜찮은 태국 음식집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은 끄룽텝. 지극히 태국스러운 이름이다.

흙흙 오늘의 점심은 맛있었다. 왠지 모르게 고향의 향기가 느껴지는 한 끼를 즐기게 되었다.
분명히 문 밖에는 태국 국기가 걸려 있었지만 식판에 담은 음식을 입으로 가져갈 때마다 고향이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나처럼 먹는 양이 적은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집은 아니다. 하지만 태국 음식을 다양하게 즐겨보고 싶다면 한 번 정도는 가볼 만하다.


자전거도 없으니 맥주 한 잔이 빠질 수 없다.

입으로 가져가는 족족 고향의 향기가 넘실거린다. 오히려 좋아. 한국 음식 생각이 간절했는데 희한한 방법으로 그리움을 해소하게 됐다.

난바로 발걸음을 옮겨서 아이스크림도 하나 물었다. 고베의 육갑목장 아이스크림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가격이 반값도 안 됐기 때문이다. 물론 돈을 더 내고서라도 육갑목장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긴 하지만 말이다.

자전거를 빌려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서 백화점의 네스프레소 매장을 들렀다. 일본에서만 파는 계절 한정 캡슐이 있다길래 발걸음한 것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이 녀석 두 통과 꽤나 비싼 진 한 병을 선물했다.

늘어뜨린 그림자가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한다. 한 번의 어스름이 내려앉고 나면 이제 정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밤이 되었다. 이거 먹으면 집에 가는 거다. 오늘을 끝으로 나에게 남은 저녁은 없다. 지나간 모든 시간이 꿈처럼 부유하는 느낌이다.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쉽고 또 아쉽다.
이타미 공항 전망대와 도톤보리의 태국식 뷔페 식당 '끄룽텝'
여행이 정말로 끝나간다. 꽤나 길고 험난했던 여행이 끝나가는 중이다.
얼마나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시작한 건지는 모르겠다. 무슨 기대를 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따금 재미가 있었지만 대체로 악으로 깡으로 버틴 여정의 연속이었다. 쉬지 않고 쏟아지는 불평불만은 여행 내내 인심 좋은 시장 할머니가 얹어주는 덤처럼 따라다녔다.
힘듦도 중독이 되나 보다. 학을 뗀 게 한두 번이 아닌데 다음 자전거 여행을 생각하는 중이다.
시코쿠 지방 어딘가에는 무수히 많은 섬을 이은 자전거 일주로가 있다던데. 일주일만 더 빨리 그 존재를 알았다면 이미 시코쿠로 향하는 버스를 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가는 시점에 알게된 탓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천만 다행이다. 그렇게 고생을 해놓고 또 다시 불구덩이에 뛰어들 뻔했다.
전날에도 이타미 공항으로 놀러온 것 같은데 오늘도 또 이타미 공항이다. 여기에 누가 겁나게 비싼 술독이라도 묻어 놨나. 왜 이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드나드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또 이타미 공항이다. 왕복 30km 남짓이라서 공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여정을 대비하기 위한 연습 코스로 나쁘지 않다. 은근히 오르막도 길어서 체력을 쌓기에도 좋다. 꽤나 적절한 난이도의 자전거 훈련장이다. 3일이나 연속으로 찾고 있다는 점이 살짝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말이다.
제정신으로 떠난 자전거 여행이 아닌 줄은 알고 있었지만 보통 제정신 아닌 게 아니다.
아마도 처음으로 맑은 하늘을 본 날이었던 듯하다. 3일 연속으로 이타미 공항을 찾은 기록이 아주 성실하게 쌓여 있지만 마지막날 찍은 사진이 독보적으로 많다.
아마도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했다. 3주에 걸친 기나긴 여정이 정말로 끝을 향하는 중이다. 곧 있으면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지나고 생각하니 어이없지만 당시에는 그럴 만했다. 너무 가열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은 탓에 지치기도 했고, 정말 하고 싶은 걸 하기에는 일정이 애매하게 짧은 탓도 있었다.
3일 연속 이타미 공항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지만 희한하게 질리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비행기가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 구경할 수 있는 프롭기가 일본에는 지천이다.
아프리카에서 딱 한 번 타 본 녀석이다. 많이 흔들릴까 봐 지레 겁부터 먹었지만 의외로 쾌적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말도 안 되게 시끄러운 프로펠러 소음에 두 번 놀랐던 것은 덤이다. 나란히 붙은 세 명의 사람이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 정도로 소음이 심했다.
언젠가 풍족해지면 반드시 들이고 싶은 전용기의 후보 기재 중 하나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살 날은 차고 넘치게 남았으니 언젠가는 이루고 말 테다. 게섯거라 전용기.
요란한 칠을 한 비행기 한 대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활주로를 향해 미끄러졌다. 자세히 보니 스타워즈라는 글씨가 보인다. 별로 관심 없는 영화라서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신작이 나왔나 보다.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겼다.
B777이었다. 거대한 비행기에 도장을 하니 훨씬 구경하는 맛이 있다. 한참을 셔터만 눌러대다가 문득 주변을 둘러 봤다. 너무 덕후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어 괜히 눈치가 보인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만 덕후가 아니었다. 모두들 정신 없이 뷰파인더만 쳐다보기 바쁘다.
즐거웠습니다. 날이 좋아서 어제보다 조금 더 재밌었네요. 아마도 한동안은 올 일이 없을 듯합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기체후 일향만강하시옵고,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공항만 갔다 왔을 뿐인데 하루가 저물었다. 이타미 공항의 간판 사진을 끝으로 카메라는 한밤 중으로 시간 이동을 했다. 나는 이날 공항을 다녀오는 것말고는 한 게 없나 보다. 며칠 남지 않은 여행을 이런 식으로 낭비하다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그리고 여행의 정말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정확하게는 떠나기 하루 전, 즐길 수 있는 마지막날이다.
내일이면 드디어 집으로 간다. 그러니깐 오늘은 기나긴 여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날이다. 다행히 하늘도 공기도 맑다. 근래에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걱정이 많았다. 마지막 날까지 비를 뚫고 동네를 유람해야 하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 날이니깐 좋아하는 커피 한 캔으로 기분 좋게 아침을 깨운다. 가장 아랫줄의 왼쪽에서 다섯 번째 칸에 있는 110엔짜리 조지아 카페오레는 단언컨대 내가 일본에서 가장 좋아하는 캔커피다.
스타벅스 더블샷 에스프레소 캔커피만큼 맛있다. 덕분에 보이면 마시고 생각나면 마시고, 그냥 마신다. 보일 때마다 한 캔씩 뽑아 든다. 질릴 법도 하지만 아무리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도 팔아주면 좋을 텐데 들어올 생각을 않는다. 일해라 코카콜라.
마지막 날이니깐 무리하지 않을 테다. 오늘은 도톤보리에서 소소하게 깔작거릴 생각이다. 일단 점심 시간이 가까웠으니 밥부터 먹어야겠다.
타베로그를 뒤지다가 발견했다. 평점이 꽤나 괜찮은 태국 음식집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은 끄룽텝. 지극히 태국스러운 이름이다.
흙흙 오늘의 점심은 맛있었다. 왠지 모르게 고향의 향기가 느껴지는 한 끼를 즐기게 되었다.
분명히 문 밖에는 태국 국기가 걸려 있었지만 식판에 담은 음식을 입으로 가져갈 때마다 고향이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나처럼 먹는 양이 적은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집은 아니다. 하지만 태국 음식을 다양하게 즐겨보고 싶다면 한 번 정도는 가볼 만하다.
자전거도 없으니 맥주 한 잔이 빠질 수 없다.
입으로 가져가는 족족 고향의 향기가 넘실거린다. 오히려 좋아. 한국 음식 생각이 간절했는데 희한한 방법으로 그리움을 해소하게 됐다.
난바로 발걸음을 옮겨서 아이스크림도 하나 물었다. 고베의 육갑목장 아이스크림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가격이 반값도 안 됐기 때문이다. 물론 돈을 더 내고서라도 육갑목장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긴 하지만 말이다.
자전거를 빌려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서 백화점의 네스프레소 매장을 들렀다. 일본에서만 파는 계절 한정 캡슐이 있다길래 발걸음한 것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이 녀석 두 통과 꽤나 비싼 진 한 병을 선물했다.
늘어뜨린 그림자가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한다. 한 번의 어스름이 내려앉고 나면 이제 정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밤이 되었다. 이거 먹으면 집에 가는 거다. 오늘을 끝으로 나에게 남은 저녁은 없다. 지나간 모든 시간이 꿈처럼 부유하는 느낌이다.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쉽고 또 아쉽다.
일본 자전거 여행기 #.마지막화, 집으로